50대 여성 A씨는 현재 전세로 바꿔서 거주 중인 아파트를 포함해 지방 소재 아파트 두 채를 지난해 말 모두 팔았다. 대신 매각대금에 모아뒀던 돈을 보태 서울 용산구의 대형 면적 아파트를 샀다. 다주택자에게 올해 4월부터 양도세 중과를 적용한다는 이야기에 차라리 지방 주택을 매각하고 서울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A씨는 "용산은 KTX로 왔다 갔다 하기도 편하고 임대 수요도 꽤 있어 보여 선택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B씨는 지난해 가을 서울 강남구에서 중형급 아파트를 한 채 매입했다. 서울로 출장 올 때마다 쓰는 호텔비를 아끼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딸 자취 비용도 줄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소식도 들려 투자 측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적당한 시점에 아들에게 증여해 결혼 후 살 집으로 넘겨주고 다주택자 규제도 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방 거주 부유층이 서울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정부의 집값 규제가 본격화한 이후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19일 매일경제가 양지영R&C연구소와 함께 국토교통부의 '매입자 거주지별 아파트 매매 거래 현황'을 조사·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사들인 서울 아파트는 2만818채에 달했다. 이는 전체 아파트 거래건수(10만7897건)의 20%에 가까운 수치다. 서울 아파트 5채 중 1채는 외지인이 산 셈이다. 2016년 17.2%에 비해 2%포인트 이상 비중이 커졌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지방은 혁신도시와 산업단지 등이 마무리되면서 주택 수요 증가세가 꺾인 반면 공급은 과잉인 상황"이라며 "반면 서울은 여전히 공급 부족인 데다 정부규제로 매물 품귀까지 나타나며 투자가치가 높아지자 지방의 돈이 서울로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작년 8·2 부동산대책 발표 후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로 지방 아파트를 팔고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상경한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용산구다. 외지인 매입 비중이 지난해 23.4%로 서울 25개구 중 가장 높았다. 올 4월 양도세 중과를 대비해 다주택자들이 '똘똘한 한 채'로 옮겨타야 하는 시점인 작년 12월에는 29.7%까지 치솟았다. 용산역 인근 A공인중개 관계자는 "부산과 대구 쪽 분들의 매입 문의가 많았다"며 "용산쪽은 외국인 임차 수요가 꾸준해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고, 용산역도 있어 지방에서 오가기도 편해 관리가 쉽다는 이점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송파·강동구도 지난해 외지인 투자 비중이 높았던 곳이다. 모두 8·2 대책 이후 외지인 투자 비중이 최고치를 찍었다. 강남구는 지난해 9월 외지인 거래가 27.9%, 송파구는 10월 27.6%를 기록했다. 강남구는 2017년 한 해 동안 아파트 7357건이 거래됐고, 외지인 매입은 1667건으로 22.7%를 차지했다. 2016년 19.9%보다 크게 올랐다. 4명 중 1명꼴로 지방 거주자가 아파트를 구입한 셈이다. 송파구는 총 8043건의 거래 중 21.8%가 외지인 몫이었다. 강동구 역시 아파트 매매 6291건 중 22.2%를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 사들였다. 서초구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8·2 대책 이후 재건축 단지 매매가 막힌 결과로 보인다. 마곡 개발 호재가 컸던 강서구는 2016년부터 새 아파트가 본격 공급되며 외지인 투자 비중이 송파와 같은 21.8%로 올라왔다.
지난해 서울에서 외지인 투자 비중이 20%를 웃돈 지역은 고속철도로 쉽게 상경할 수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강서구는 김포공항에 인접해 마찬가지 장점이 있다.
반면 지방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외지인 투자 비중이 줄고, 집값 상승폭도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다. 작년 한 해 외지인 투자 비중이 가장 낮은 5개구는 은평구(16.0%) 중랑구(15.6%) 도봉구(15.0%) 성북구(14.9%) 강북구(13.9%) 등이다. 성북구의 외지인 매입 비중은 2015년만 해도 22%에 달했지만 2016년 15.8%로 하락한 후 작년엔 14.9%로 떨어졌다. 성북구의 지난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2.1%로 강남구(6.8%)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박인혜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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